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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꿈일까, 현실일까 그리고 나는 누구일까-<사라진 시간>(2020)영화와 맥주 한 잔 2020. 7. 2. 14:34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삶을 살다가 보면 어떤 순간에는 그 현재의 삶이 꿈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아주 행복한 상황을 만나거나, 아주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을 때 우리는 그것이 그저 꿈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 꿈은 자신이 정말 바라던 것일 수도 있고, 전혀 바라지 않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래서 하루 이틀 그 현실을 직시하다 보면 그 꿈이 무엇인지 자꾸만 반복해서 생각하게 된다. 다른 의미에서 현실과 꿈의 경계가 매우 모호해진다. 우리가 늘 꿈꾸던 상황을 현실에서 맞이했을 때는 그 현실을 벗어나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현실이 고통이라면 그것에서 어떤 식으로든 벗어나려 분투한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건, 꿈일까, 현실일까. 현재 혹은 현실이라는 문제는 과거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약을 먹고 꿈에서 깨어날지, 아니면 현실세계로 돌아갈지를 선택하는 철학적 문제와 닿아있다. 단순히 우리는 우리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어떤 장면이나 순간을 생각하며 꿈이라는 생각을 현실을 살아가면서 만들어낸다. 그 꿈은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이 살아왔던 역사와 위치를 인정하고 나아가게 만든다.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현실 속에 나의 위치를 인정하고 기억하면서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꿈과 현실의 어딘가를 이야기하는 영화
영화 <사라진 시간>은 꿈과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은 마을에 옮겨와 살고 있는 외지인 부부 수혁(배수빈)과 이영(차수연)이 어느 날 밤 화재 사고로 사망하면서 그 사건을 조사하게 된 형사 형구(조진웅)의 이야기가 차례로 진행된다. 영화는 초반 30분 정도를 할애하여 수혁과 이영 부부의 그들의 상황과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영에게 약간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외지로 나와 살아야 하는 수혁은 아내를 위해 그 모든 것을 감내한다. 시종일관 수혁의 얼굴엔 밝은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어느 순간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한다. “참 좋다”.
아내 이영의 문제가 마을에 알려지면서 그곳의 삶에 제약이 생기지만 그들의 태도는 시종일관 동일하다. 상대방이 어떤 식으로 변해가든 현실을 수용하고 받아들인다. 그런 마음들은 영화 속에서 “예쁜 마음”으로 지칭되며 그 부부가 서로 의지하며 자신의 삶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들과 마을 사람들 간의 관계가 틀어지는 과정 속에서도 그들을 둘 간의 마음과 태도를 버리지 않는다. 반면에 이들을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은 부부의 이야기를 서로 빠르게 공유하지만 부부를 마을에서 단절시켜 버린다. 시종일관 마을 사람들은 모두 우왕좌왕하고 서로를 믿지 못하지만 부부는 서로를 믿고 의지한다.
영화에서 이 부부의 이야기에 공을 들여 설명하는 이유는 이것이 추후 진행되는 이야기의 시발점이 되기도 하거니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삶의 태도에 대한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수혁과 이영 부부는 자신의 삶을 수용해나가며 주체적인 태도를 유지하지만 다른 마을 사람들은 그저 우왕좌왕하며 남의 이야기를 듣는 수동적인 행동을 한다. 그래서 영화 속에 비치는 그들의 모습은 이야기 내내 나사가 하나씩 빠진 것처럼 보인다.
형사 형구의 등장과 함께 반전되는 상황
수혁과 이영 부부가 화재로 사망하고 난 이후, 등장하는 새로운 인물 형구는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 없는 인물이다. 형사가 되고, 결혼을 해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그는 도덕적으로 아주 올바르지도 않고, 부패하지도 않은 흔히 볼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가 이 사건을 맡게 되면서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을 만나게 된다. 그가 사건을 수사하다 마을 회관에서 벌어지는 생일잔치에 참여하게 되는 장면을 보면, 그가 여러 차례 그 자리에 참여하거나 술을 거부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에는 그 자리를 피하지 못한다. 그 역시 다른 마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수동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
영화는 초반 부부의 죽음으로 이야기를 한 번 전환하고, 형사 형구가 마을회관에서 벌어지는 잔치에 참여한 이후 이야기를 한 번 더 전환한다. 그래서 영화는 오컬트, 미스터리, 수사, 범죄, 로맨스 등 장르를 오가며 다양한 방법으로 이야기를 변주시켜 관객의 예측을 벗어난다. 형구는 그 문제의 잔치 다음 달 눈을 뜨고 자신의 정체성이 완전히 바뀌어 있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형사가 아닌 선생님으로 변해있고, 과거의 아내나 아들 등의 관계들은 모두 지워져 있다.
형구는 그 날이후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정체성을 하나하나 확인해 나가는데, 학교로 출근을 거부하고 과거에 자신이 거주했던 아파트에 간다던가 과거 자신의 아들이 다녔던 학교로 찾아가 기록을 검색한다. 그가 가진 기억에 집착하면 할수록 주변의 시선은 따가워진다. 다시 과거의 삶을 찾을 수 없는 형구는 그 삶이 꿈을 꾸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극단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도 감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체성은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선생님으로 머문다. 그 이상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는 그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변을 서성인다.
결국 자신의 현재 삶에 대한 확신과 태도에 대한 이야기
영화 후반부의 형구는 중반까지 보이는 모습과는 다르다. 후반부로 갈수록 그는 점점 그 자신의 위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조금씩 변해간다. 초등학교 강의를 거부하던 그는 하나씩 하나씩 아이들의 수업을 진행하기 시작한다. 그가 한 아이의 상담을 진행하고 그 아이의 사물함에서 아이의 과거 사진을 발견하기도 한다. 형구는 그것을 보고 생각한다. ‘작은 아이조차도 숨겨두고 꺼내보고 싶은 과거가 존재하는구나’. 그 과거는 정말 그의 과거일 수도 있고, 그의 전생이라고 볼 수도 있고, 그저 꿈속의 한 순간일 수도 있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완벽하게 이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영화를 따라가기 쉽지 않다. 각 사건들의 인과관계는 명확히 이어지지 않으며, 특정 사건이 벌어진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익숙한 장르물의 이야기를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난해하고 이상한 이야기로 다가갈 가능성이 크다. 주인공들이 겪는 모든 상황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구성되어 있으며, 결국 형구의 정체성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다.
형구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모습은 우리의 주변에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과거 좋았던 시점의 자신을 생각하며 현실에서 절망에 빠져있거나, 그 과거의 꿈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은 현재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해 그저 예전의 꿈같은 시절을 그리워하며 산다. 사실 현재의 자신을 받아들이며 사는 사람들도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후반부 형구가 만난 초희(이선빈)는 형구와 비슷한 경험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의 삶을 어렵게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그 둘이 마주 앉아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상황에 대해 공감할 때, 그 현재는 바로 현실이 된다. 형구는 그런 초희를 만난 이후,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참 좋다”. 결국에는 앞서 등장한 선생 수혁과 같이 자신의 정체성과 삶을 받아들인다.
영화 <사라진 시간>은 배우 정진영의 감독 데뷔작이다. 감독의 여느 인터뷰에서 했던 말과 같이 이 영화는 장르가 없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 전개가 예측이 불가해 매우 흥미롭게 볼 수 있지만, 영화의 틀과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이상하게 느껴지고 빈 공간이 많아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물론 영화를 관람하고 난 이후 영화 속의 빈틈을 채워 나가며 자신 만의 해석을 붙이는 것을 즐기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가 매우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다. 정진영 감독이 만든 데뷔작은 영화적 재미와 철학적 관점을 더하면서 새롭고 훌륭한 영화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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