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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막말을 쏟아내는 그들에게-<생일>(2019)영화와 맥주 한 잔 2020. 7. 2. 16:44
6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내뱉는 사람들은 변하지 않았다. 2014년 4월 16일,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에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그중에서 325명, 꽤 많은 수를 차지했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은 수학여행을 가던 길이었다. 그 일이 비극이 될 것이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의 악몽으로 기억된다. 그 당시에도 쓴 말을 내뱉었던 사람들은 여전히 이 악몽을 정치적 노림수로 사용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단지 정치적 이용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사건에 대해 그런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왜 그들은 변하지 않는 걸까. 그것이 가짜 뉴스에 의한 확증편향이 심해져서라고 할지라도 그걸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의 입장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여전히 명확한 비극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있는 그 사건이 그들에게는 그저 보상금이나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로 밖에 비치지 않는다. 그 반대편에서 세월호 유족들은 이중, 삼중의 고통을 다시 겪는다. 그런 정치인들의 말들이 한 번 지나가고 나면 그들을 추종하는 지지자들이 다시 한번 그 속을 긁어놓는다. 그렇게 그 고통은 지겹게도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지난하게 이어진다.
세월호 6주년, 하지만 여전히 아픈 말을 던지는 사람들
세월호 6주기가 되는 2020년 4월 16일, 묘하게도 총선과 맞물리면서 세월호는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화자 되는 계기 자체가 한 정치인의 막말 때문이었다. 이 사고가 생긴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대통령이 바뀌고, 정부부처의 관리자들도 바뀌고, 여러 가지 사회 시스템도 바뀌어 왔다. 하지만 당시부터 세월호 사건을 그저 단순한 사고로 봐왔던 사람들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그들은 6년 내내 세월호 유족들의 건너편에서 아픈 말들을 던져왔다. 그런 그들에게 유족들의 삶이 어땠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영화를 통해서나마 알려주고 싶다.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는 그들에게 영화 <생일> 관람을 추천한다.
2019년 영화 <생일>이 개봉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유족들이 겪고 있는 마음속으로 들어와 그들의 삶과 생각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속 단원고 학생이었던 수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이 영화에는 그 사고 당시의 고통을 반복하지 않는다. 이미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그 고통의 순간을 묘사하기보다는 그 이후 남은 가족들과 주변인들이 겪어야 했던 심리적, 사회적 어려움을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는 사건 직후의 상황보다는 2019년 현재의 시점으로 해외에서 귀국하는 수호의 아버지 정일(설경구)과 한국에서 살고 있는 수호의 어머니 순남(전도연)의 뒷모습을 천천히 비춘다. 특히 정일은 이 영화에서 세월호 사건을 직접적으로 겪지 못한 유일한 가족이다. 그는 사건 당시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해외에 묶여 그 사건을 제대로 접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뒤를 따라가는 시선은 외부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안타까워했던 외부인의 관점을 반영한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고 이후 유족들의 삶
정일의 시선을 줄곧 따라가기에 외부인인 우리는 정일의 생각이나 감정에 좀 더 몰입해서 보게 된다. 오랜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딸 예솔(김보민)을 만났을 때, 예솔이는 아빠에게 다가가기를 많이 망설인다. 큰 사고 당시 아빠가 옆에 없었던 것 때문인지 예솔이는 도어락 번호를 누를 때도 숫자를 가리고, 선뜻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 이런 예솔이의 태도는 마치 외부인을 만난 유족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세월호 유족인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를 고민하며, 새로 만나는 사람들과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만들어 살아가는 모습이 어쩌면 그들이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방법일지 모른다.
사고 당시 그것을 온몸으로 모두 체험했던 아내 순남과 딸 예솔이는 그때 이후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일은 그것을 잘 이해하려 하면서도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아내를 이상하게 생각한다. 벌써 5년이나 지났는데 왜 그렇게 마음을 닫고만 있는지, 그 당시 사정이 있어서 한국에 있지 않았던 자신에 대해 왜 아무런 이해를 해주지 않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다른 가족들에게 아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털어놓아도 오히려 자신이 이상하다는 핀잔만 받는다.
영화 속 외부인의 시선은 정일을 통해 세세하게 전달된다. 순남의 행동과 밀어냄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정일의 캐릭터는 세월호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외부인의 관점을 대변한다. 정일에게는 오랜만에 본 아내가 이상하게만 보인다. 순남은 희생자 가족들 모임에도 나가지 않고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어두운 얼굴로 다른 사람과 교류를 꺼린다. 애써 밝게 웃고 이야기하는 다른 희생자 가족들의 태도에도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그런 자리를 외면하는 순남을 그 안으로 끌어 들어가려는 정일은 더욱더 아내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거리감을 느끼며 절망한다.
그런 정일은 진정한 외부인의 시선을 몸소 체험한다. 그 문제를 만나며 정일도 서서히 유가족의 위치로 옮겨간다. 바로 보상금에 대한 그들의 태도 때문이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유가족들의 고통을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여전히 몇몇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좀 슬프지만 그래도 정부에서 꽤 많이 챙겨 받았잖아."
이 말속에는 날카로운 칼이 들어있다. 그들의 가족은 이미 망자가 되었다. 수억 만금이 그들의 손에 쥐어진다고 해도 그들은 죽어간 자식을 다시는 볼 수 없다. 그들은 아직 원인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그 사건을 죽을 때까지 트라우마로 기억하며 살아갈 것이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뱉어내는 그런 편견의 말들로 그들의 삶이 어떨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향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 왜 아직도 그러고 있냐고. 이제 그만하라고.
영화는 그렇게 진정한 유가족의 위치로 옮겨가는 정일의 모습과 여전히 아들 수호를 그리워하는 순남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수호의 생일 파티로 우리를 이끈다. 마치 손을 잡고 그 자리에 같이 참석해 같이 자리한 것처럼 꽤 오랜 시간 이어지는 생일 파티 장면은 그 사고를 겪은 그들의 마음속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게 만든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시작한 영화는 영화의 말미에 관객을 세월호 유가족 내부자로서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모든 행사가 끝났을 때, 마지막 시를 듣고 크게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정일의 모습은 관객들의 마지막 감정이 크게 터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관객 또한 온전히 그들이 되었다.
여전히 막말을 던지는 그들에게
여전히 이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여전히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갈구한다. 영화 <생일>은 유가족들이 지난 시간 동안 살아온 삶과 태도를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겼다. 그들의 지난 삶은 힘들고 고단했지만, 그들은 미소를 잃지 않으려 애쓰고, 끝까지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알게 됨으로써 진정으로 자식들을 마음에 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이 영화 관람을 막말을 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만약 그들이 영화 <생일>을 보았다면 그들에게 꼭 묻고 싶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어쩌면 그들은 앞으로도 계속 이해하지 못하고 막말을 던질지 모른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유가족들을 이해한다면 그들은 기꺼이 막말을 던지는 이들을 퇴출시키고, 그 막말을 몸으로 막아줄 것이다. 6년 전 그때는 지키지 못했지만 이제는 우리가 지켜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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