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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30대 커리어 우먼의 이야기-<이지파 생활>(2021)영화와 맥주 한 잔 2021. 8. 11. 22:32
중국 드라마 <겨우, 서른>의 마지막 회를 보고 나서 캐릭터들을 놓아주는 것이 꽤 오래 걸렸다. 구자와 만니, 샤오친, 세 여성의 이야기는 중국의 현재 사회상을 보여주면서도 한국에 있는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 공개된 중국 드라마 <이지파 생활>도 <겨우, 서른>와 비슷하게 캐릭터에 정을 붙일 수 있는 드라마다. 33살의 여성 선뤄신(친란)이 주인공인데, 대도시 상하이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이다. 관리자 직급이고 싱글이다. 선차장이라고 불리는 이 여성의 이야기는 <겨우, 서른>에서 만니의 캐릭터를 가지고 와 좀 더 집중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겨우, 서른>의 만니는 드라마 말미에 자신을 위해 좀 더 공부하는 것을 택했다. 서른이 된 시점이지만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에 좀 더 집중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자신의 나이, 환경, 상황 그리고 주변의 여러 말들을 듣고 자기 자신이 온전히 고민하고 결정한 길이다. <이지파 생활>의 선차장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기업인 젠프로의 법무팀에서 꽤 오랜 기간 경력을 쌓았고, 내부 경쟁 상황 등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해결점을 찾아나가며 노력하는 모습이 드라마 내내 이어진다. 업무적인 측면뿐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 연애관 등이 포함되면서 선차장의 캐릭터가 좀 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캐릭터로 만들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만니와 닮은 점이 있다.
드라마 초반은 선차장이 어떤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고 해결하는지를 중점적으로 보여주면서 사내의 정치 상황으로 인한 피해를 다룬다. 그리고 중반이후에는 아주 조건 좋은 남자를 등장시켜 그가 가진 연애관과 생각에 대해 보여준다. 후반부는 연하 남 치샤오(왕학체)와의 연애와 주변부의 반응을 다루고 있다. 긴 호흡의 드라마를 얼핏 보면 연상연하 커플의 이야기가 중심이 될 것 같지만, 사실은 주인공 선차장과 치샤오의 관계는 중후반부에 중점적으로 다루어진다.
중국의 체제가 사회주의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구성원이 생활하는 모습이나 고민은 일반적인 다른 나라와 큰 차이가 없다. 높아만 지는 집값, 어려워지는 취업의 문, 육아의 문제 등 여느 국가의 대도시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들이 점점 수면 위로 올라오는 중이다. <이지파 생활>에서도 이런 부분들이 다루어진다. 상하이의 높은 집값, 대학 졸업 후 취업의 어려움, 취업 후에도 정규직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 그리고 결혼 후 아이를 낳을 것인지 등 이미 한국에서 꽤 오래전부터 문제가 되었던 것들이 다뤄진다. 한국은 이미 꽤 많은 현실이 드라마나 영화에 담겨 많은 사람의 공감을 받았었다. 아마도 중국도 대중매체에서 그런 문제들이 조금씩 다루어지는 것 같다.
치샤오의 친구 쑤양, 요쓰자를 통해서는 상하이에 정착하려는 지방 청년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비싼 월세 등 주택문제와 취업의 어려움, 비정규직에 대한 문제를 이 두 사람의 위치와 관계로 보여준다. 또한 선차장의 친구 쯔옌 부부는 자녀가 없는 딩크 부부인데 자녀를 원하는 주변 사람들과 조금은 변한 남편과의 관계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담겼다. 두 커플 모두 중국 내 부상하고 있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어 많이 관심이 갔다.
선차장과 치샤오는 연상연하 커플이 된다. 실제로 커플이 되는 건 드라마의 후반부이니 그 앞의 이야기들은 선뤄신이라는 인물에 대한 특성이 담기게 된다. 그가 이성적으로 일처리를 하는 모습은 물론이고, 그가 연애를 왜 그렇게 피하는지, 어떤 조건의 인물에게 끌리는지를 차근차근 보여준다. 중요한 건 드라마 속 대부분의 선택은 선차장 자신이 선택한다는데 있다. 선차장이 치샤오라는 인물을 사귀기로 결정하는 데에는 다른 사람의 의견보다는 자신의 판단이 중요했다. 즉 치샤오라는 인물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믿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자기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자신 있어하는 인물이다. 직장에서도 다른 상사에 먼저 의지하기보단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최대한 시도해보고 안되면 상사와 논의하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한다.
어쩌면 매우 이상적인 한 인간의 모습이 선뤄신이라는 인물에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30대 커리어우먼의 전형적인 모습이 선차장에 잘 녹아들어 가 있다. 드라마를 보 다보면서 선차장을 더욱 응원하게 되는 건, 그가 가진 이상적인 모습이 우리 모두가 가지고 싶고 되고자 하는 모습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전히 여성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있다. 많은 노력을 해도 잘 되지 않을 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해결 방법을 시도해보는 선차장의 모습은 참 멋지다.
선차장과 치샤오의 캐릭터는 조금은 과하게 선하고 완벽해 보인다. 또한 드라마의 결말도 너무나 행복하게 마무리가 되기 때문에 판타지 같은 느낌이 든다. <겨우, 서른>이 드라마 끝까지 현실과 이상의 명암을 분명히 담았다면, <이지파 생활>은 현실을 가볍게 다룬 이후 연상연하 로맨스에 집중하고 있고 조금은 이상적으로 끝을 맺는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고 나면 조금은 현실감이 떨어져 보인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건 선뤄신이라는 인물 때문일 것이다. 조용하고 단호하게 말하는 그의 스타일과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다시 그 모습을 보고 싶게 만들고 그 캐릭터를 놓아주기 어렵게 만든다. 치샤오의 완벽한 연하남 캐릭터도 매력적이지만 그를 어렵게 받아들이고 그 관계를 좀 너 나은 관계로 끌고 나가는 선뤄신이라는 인물이 이 드라마가 가진 매력의 대부분을 이끌어낸다.
드라마를 보면서 아내와 처음 만나고 고백했던 순간들이 떠올라서 좋았다. 사귀기 전 서로에게 끌리면서도 말을 못하던 무수한 순간들, 그리고 서로 만나보는게 어떠냐는 말을 던질 때의 짧고도 긴 침묵. 사귀기로 한 이후 서로 눈이 마주치기만 해도 베시시 웃음을 머금었던 서로의 얼굴이 머리 속에 스쳐지나갔다. 사실 드라마에서 선뤄신과 치샤오의 로맨스가 제대로 다루어지는 건 마지막 7회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그 에피소드들에 담긴 둘의 모습은 그들의 설레는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어 좋았다. 아마도 이후에도 생각나면 치샤오가 유리문 너머에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을 여러 번 돌려보면서 대사를 외워버릴 것 같다. 치샤오는 사실 비현실적인 완벽한 연하남이다. 하지만 그가 가진 책임감과 상대에게 작은 무엇이라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은 모두가 연애 초반 가지고 있는 마음이기도 하다. 결혼 9년차가 된 지금 그 마음 그대로 아내에게 해준다고 하지만 여전히 부족해 보이는 나 자신도 생각하며 무엇을 더 해줄 수 있을지, 내가 변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드라마<이지파 생활>은 <겨우, 서른>에 비해서는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는 드라마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로맨스도 같이 담고 있어 재미있는 드라마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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