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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행을 드러내고 연대하다-<밤쉘>(2020)영화와 맥주 한 잔 2020. 7. 14. 12:41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있다. 고용주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회사를 키워가기도 하고,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들을 성취해간다. 과거의 커리어는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가 크게 작용했지만, 최근의 커리어에서는 먹고사는 문제에 더해 자아실현 또는 성공이라는 것이 덧붙여져 있다. 우리는 이런 직업에 걸려있는 건 단순히 삶을 살아간다는 것 이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일을 하러 가고, 늦게까지 일에 매달리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한 걸음씩 삶을 살아간다.
특히나 여성들의 입장에서 집안 일과 육아에 주로 매달리던 삶에서 이제는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들은 더 이상 집 안에 갇혀있지 않고 점점 더 밖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2020년을 맞고 있는 지금까지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여성은 남성에 비해 여전히 불리한 위치에 있다. 아직도 임원진은 성별차는 존재하고, 성별 간의 임금 격차도 존재하는 상황이다. 또한 여기에는 여전히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일부의 남성들은 그들을 억누르고 있다. 그 억누르는 권력 앞에 일부 피해 여성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길 꺼린다.
폭스 뉴스의 성추행 사건을 다루는 영화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은 보수적인 케이블 방송사인 폭스뉴스의 내부에서 벌어진 성추행 사건을 다루고 있다. 영화에는 세 인물이 등장한다.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메긴 켈리(샤를리스 테론), 내부에 있다 퇴출되어 내부를 잘 알고 있는 그레천 칼슨(니콜 키드먼), 그리고 방송 진행자가 되길 원하는 신입 케일라(마고 로비)는 각자의 입장에서 각자의 경험으로 사건을 바라보게 만든다.
영화 속 세 인물과 모두 연결된 인물은 폭스 뉴스의 사장인 로저 에일스(존 리스고)다. 그는 오랜 기간 동안 폭스 뉴스의 사장으로 경영을 이끌면서 폭스 뉴스의 성장을 이끈 주역이다. 폭스 뉴스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루퍼트 머독(말콤 맥도웰)이지만 실질적으로 해당 방송을 성공으로 이끌어 온 리더는 로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그레첸, 메긴을 차례로 키워 간판 진행자로 만들고 그들이 원하는 바를 듣는다.
영화 초반 그레첸, 메긴은 각각 그들의 진행방식이나 방향성, 그리고 자신들의 입장을 로저와 대화를 통해 풀어나간다. 그래서 주로 이들이 업무에 관한 대화를 나눌 때 비치는 로저의 모습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업무적 감이 있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성공할 수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벌어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것으로 비춰진다. 그래서 로저와 마주 앉은 그레첸과 메긴은 약간은 긴장된 모습으로 논의에 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상사이기 때문도 있지만 그가 하는 말이 업무적으로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 그레첸과 메긴의 위치는 다르다. 그레첸은 이제 점점 방송국 중심의 외부로 밀려나는 위치이며, 급기야는 한순간에 퇴직하게 된다. 반면 메긴은 방송사의 메인 진행자로서 당시의 대통령 후보와 격렬한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그에 따라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메긴은 더더욱 긴밀하게 회사의 사장인 로저와 논의를 이어간다.
과거, 현재, 미래의 여성을 대표하는 세 인물
그레첸과 메긴과 달리 실존하는 인물이 아닌 가상 인물로 설정되어 있는 케일라는 그 당시 시점에서의 회사 내 여성의 위치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즉, 폭스 뉴스라는 회사 내에서 그레첸은 이미 전성기를 지난 과거, 메긴은 현재 최정점에 있는 인물을 의미한다면, 케일라는 그레첸과 메긴이 지나왔을 법한 신입 시절의 현재를 보여준다. 이 세 사람에게는 로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물들의 의미와 동일하게 그레첸이 가장 먼저 성추행을 당했고, 그다음 메긴 그리고 케일라는 현재 시점에도 성추행을 당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세 인물들은 각 커리어 상의 위치를 보여주면서도 그 일이 과거로부터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를 같이 내포하고 있다. 케일라는 어느 날 로저의 방으로 초대되어 그에게 자신의 생각과 능력을 어필한 기회가 온다.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다 로저는 TV는 시각적인 미디어라며 몸을 보자고 한다. 짧은 치마를 입고 갔던 케일라는 로저의 눈에 띄어 기분이 좋아하면서도 치마를 더 올려보라는 그의 요구에 당황스러워한다.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꿈을 꼭 이루고 싶었던 그는 결국 로저의 요구를 들어주고 만다. 그런 비자발적 행위는 상당기간 지속된다. 이는 현재에도 이런 일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레첸은 이제 커리어의 정점을 찍고 회사에서는 다소 힘이 빠진 인물이다. 과거에 화려했지만 페미니스트 적 생각과 발언을 공공연히 방송에서 하던 그는 로저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비인기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다가 결국 회사에서 해고당한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해온 대로 로저의 성추행 문제를 법적으로 문제 삼아 과거의 추행을 세상 밖으로 꺼내어 놓는다. 그레첸의 이런 용기가 없었다면 이 일은 결코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회사 내부에서 이런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면, 아무리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했다고 할지라도, 또한 자신이 높은 위치에 있을 때라도 그 내부에서는 그런 내부 고발을 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속 가장 중요한 인물인 메긴은 그러한 내부 고발의 어려움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전히 내부에서 높은 위치에 있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영화에서 가장 고민을 많이 하는 캐릭터다. 외부 시청자들의 반응에 민감하고, 내부에서 더욱 성공한 위치를 고수하려는 자아실현의 욕망이 가득한 그는 자기 자신도 로저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경험이 있지만 그레첸의 법적인 고소를 신경 쓰지 않으려 애쓴다. 또한 자신마저 로저에게 등을 돌리면, 자신과 일하고 있는 팀이 일자리를 잃어 생계 걱정을 해야 하는 문제들도 고려해야 한다.
사실 영화 속에서 가장 자신의 결정을 하기 어려운 사람이 메긴일 것이다. 또한 그레첸이 가장 필요한 지원군 또한 메긴일 것이다. 그들은 직접적인 끈이 없고 만날 기회가 적었지만 그들은 로저의 성추행을 공론화 장으로 내놓는다. 과거 성추행을 경험한 퇴직자들의 증언들에 더해 내부의 성공적인 위치에 있는 메긴이 연대하면서 그들의 목소리는 완전하게 밖으로 꺼내어졌으며, 로저에게 진정한 복수를 진행하게 된다.
여전히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영화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의 주인공들은 결국 과거의 아픔을 꺼내어 세상에 드러내 놓는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소기의 성과를 거둔다. 로저는 결국 회사로부터 해고를 당한다. 아마도 폭스 뉴스에도 약간의 변화는 있었을 것이다. 영화는 여전히 어딘가에서는 동일한 일들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말한다. 영화 속 케일라처럼 그곳을 그냥 떠날 수도 있고, 아니면 계속 성공을 위해 수모를 감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직장 내에서 여성들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만들고 있다. 또한 여성들이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비상식적인 성추행이나 권력남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여성의 목소리가 커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권력형 성추행 사건들은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우리 모두가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다.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은 각기 다른 위치에 있는 여성들의 시각에서 흥미롭게 사건에 접근하고 있어 지루하지 않게 사건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고, 무엇보다 샤를리스 테론의 연기는 복합적인 인물인 메긴의 고민을 더욱 공감할 수 있게 만든다. 지금 현재 시점에도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를 던져주는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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