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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고 또 아쉬운 속편 <반도>영화와 맥주 한 잔 2020. 7. 20. 23:05
지금 우리는 전염병이라는 재난 속에 살고 있다. 꽤 빠르고 다른 바이러스보다 치명률이 적당이 높은 코로나 바이러스 덕분에 우리는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고 조심하며 살아간다. 또한 인터넷에서 바이러스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을 교류한다. 누군가를 비난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돕기도 한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가 오면 오히려 나를 도와줄 사람을 판단하기는 어려워진다. 누군가는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을 혐오하고 멀리하고 다른 누군가는 그 사람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렇게 전염병이 빠르게 퍼지면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인간 군상이 더욱 또렷이 보이기도 한다.
전염병 상황이 악화되고 오랜 시간 이어지면 사람들은 지치고 결국 어느 정도 포기하게 된다. 전 세계적으로 더욱 퍼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바로 그런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은 바이러스 노출의 우려에도 경제활동을 다시 시작하고 있다. 또한 이미 어려운 삶을 살아왔던 층들은 더욱 어려워지고 부유한 삶을 이어왔던 사람들은 큰 어려움 없이 이 상황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계급적인 갈등은 더욱더 심화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대다수는 지금 현재의 위치에서 적응하려 노력 중이고 적응을 해 나아가고 있다. 전염병 전과 후의 세상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영화 <부산행>은 좀비 전염병을 등장시켜 열차 내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준 영화였다. 한정된 공간인 기차에서 좀비 전염병이 순식간에 번지고 그 안에 살아남은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성향에 따라 위기에 대응하는 모습이 흥미롭게 펼쳐졌다. 한국에 전염병이 창궐하게 되는 시작점부터 보이는 영화는 빠르게 달리는 기차 안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시점이 현재였던 영화 속 설정이 주는 긴장감이 있었고, 무엇보다 빠르게 달리지만 열차 안이라는 공간의 폐쇄성은 좀비라는 장르에 꽤 잘 어울렸다. 약간의 신파가 더해지긴 했지만, 영화가 가진 속도감이 그런 신파적 느낌은 최소화되었다. 그래서 <부산행>은 흥행에 성공했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전염병이 돌고 있는 지금과 묘하게 닮아있는 좀비 영화 <반도>
성공한 본편에 힘을 받아 속편 <반도>가 관객들을 찾았다. 전염병이 벌어진 현재 상황과 묘하게 닿아있는 영화는 과거 <부산행> 시점에서 4년 후의 서울을 다루고 있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과거 군인이었던 정석(강동원)이다. 과거 전염병이 창궐하기 시작한 한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누나의 가족과 함께 해외로 나가는 배를 타지만 배에서도 감염자가 나오면서 누나와 조카를 잃은 그는 매형 철민(김도윤)과 함께 홍콩에서 생활하게 된다. 이들에게 그 4년간의 홍콩 생활은 지옥과 같았을 것이다. 죽은 이를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현지 사람들의 차별과 조롱에 그들의 모습은 사회 낙오자의 모습 그대로다.
정석과 철민의 모습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코로나의 상황 속에 차별 상황과 묘하게 겹쳐진다. 전 세계에 코로나 확진자가 퍼지는 이 시기에 아시아인이나 중국에 대한 인종차별과 혐오가 벌어지고 있으며, 감염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해당 인종들을 곱게 보지 않는 시선이 존재한다. 정석과 철민은 홍콩에서 생활하며 주변의 불편한 시선에 은근한 불만을 표하지만 그들을 보는 시선들을 바꾸지는 못한다. 그들은 그곳에서 그저 환영받지 못하는 난민의 탈을 쓴 이방인일 뿐이다.
그 두 인물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얻으면서 영화는 세계와 완전히 차단되어버린 한국의 상황을 보여준다. 영화가 보여주는 한국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버린 모습이고, 좀비들이 거리를 멍하니 걸어 다니고 있다. 이는 전염병으로 몰락해버린 도시의 모습을 실감 나게 보여주고 있어 꽤 매력적인 이미지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정석과 철민이 인천항을 통해 들어오고 나서 목격하게 되는 버려진 차들과 잡초가 자란 도로 그리고 텅 빈 도심지의 모습은 이 영화가 포스트 아포칼립스 속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임을 알린다.
폐허 속에서 그들만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
영화에는 현지에서 살아남은 가족인 민정(이정현)과 그들의 아이인 준이(이레), 유진(이예원)이 등장하며 또 다른 집단인 서 대위(구교환), 황 중사(김민재) 등의 인물이 등장한다. 정석이 차례로 만나게 되는 생존자들은 정석과 다르게 전염병이 발생한 이후 그곳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배워나간 사람들이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곳에 적응한 사람들은 반쯤 미쳐있거나 혹은 아주 또렷한 정신으로 주변의 위험들을 피해 가면서 살아간다. 이런 상황에 정석은 지난 4년을 경험하지 못한 외부인의 입장에서 이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데, 남성인 정석과 여성인 민정의 가족들이 협력하면서 남성 중심의 미치광이 집단을 제거하고 벗어나려 한다는 측면에서 영화 <매드 맥스>가 떠오른다.
사실 이런 설정들은 이미 우리가 여러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에서 보아온 설정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반도>는 <매드 맥스>를 떠오르게 하는 요소들이 많다. 카체이싱 장면이나, 여러 차들이 변형된 형태 그리고 남자와 여자들이 한 집단에 대항해 탈출하는 모습 등을 보면 유사한 점이 많다. 영화 속 인물들의 구도를 전작인 <부산행>에 비해 단순화하면서 이야기의 갈등 구조를 명확하게 설정했다는 것, 그리고 어딘가로 탈출을 차로 해야 한다는 점을 보면 더더욱 이 영화가 지향하는 점이 명확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좀 더 오락성을 강조하면서 전작과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끝까지 속도감 있게 관객의 시선을 끌고 나아가길 원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영화에서 가장 공들여 관객에게 보여주는 장면은 카체이싱이다. 폐허가 된 도심지에서 엄청난 속도로 뛰어오는 좀비들을 차로 치거나 피해서 질주하는 모습은 충분히 박진감이 넘치고 속도감이 느껴지지만 그것이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등장하면서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빠진다. 또한 전작은 한정된 공간에서 좀비들이 출몰하면서 긴장감을 만들어가는데 비해, 이 영화는 넓은 공간에서 좀비를 피하기 때문에 숨 막히듯 옥죄어 오는 긴장감은 덜한 편이다. 무엇보다 좀비들이 일종의 영화적 도구로 소비되어 버리면서 좀비 영화 특유의 감성을 포기해 버린다.
<부산행>의 세계관을 계승하지만 아쉬운 속편
영화가 왜 전작의 직후 또는 1년 후가 아닌 4년 후를 택한 것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현재의 설정이 근미래로 변경되면서 이미 모든 재난이 벌어진 이후이기 때문에 결국 그 안에서 다뤄지는 것은 그 안에서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과 그들 간의 갈등일 것이다. 그런 변해버린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죽음의 도시인 서울을 탈출하는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재난 상황은 줄었고, 그만큼 긴장감은 떨어진다. 총기 액션을 대신 보여주지만 그렇게까지 인상적이지 않다. 또한 영화 속 서 대위 캐릭터가 꽤 매력적인 빌런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너무나 쉽게 소비되어 버리고 만다.
영화 초반 배 속에서 감염이 퍼지는 과거 이야기가 꽤 흥미롭게 펼쳐지는데, 4년 후가 아니라 부산행 직후 시점에 한국을 탈출하는 배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면 좀 더 긴장감이 있지 않았을까. 폐쇄적이고 꽤 많은 배가 등장하기 때문에 좀 더 현실감 있는 전개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는 4년이나 지난 시점인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택했고, 좀비 장르의 특성을 일정 부분 포기하면서 총기 액션과 추격 액션으로 그 부분을 만회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 전편의 긴장감이 다 채워지지는 못했다.
한국 블럭버스터 영화답게 영화에는 몇 번의 신파 장면이 나온다. 전편인 <부산행>에서도 일부 신파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극의 일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 <반도>는 영화 중반과 후반부에 꽤 많은 비중을 들여 관객의 마음을 두드린다. 전편이 부성을 강조했다면 이번 편은 모성을 좀 더 강조하고 있고, 무엇보다 가족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가족이 함께 있는 공간이 결국 집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듯, 영화 속 막내 아이인 유진은 좀 더 나은 세상으로 갈 거라는 외부인의 말에 이야기한다.
"제가 살던 곳도 정말 좋았었다고요"
그의 말속에는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든 가족과 함께 있으면 그곳이 바로 좋은 집이 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전염병이 퍼지면서 현실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지만 그 지옥 같은 상황 속에서도 가족과 함께 있다는 것은 그 변화되는 상황에 가장 빨리 적응하는 방법이면서 전염병을 이겨낼 수 있는 최후의 보루 인지도 모른다.
영화 <반도>는 여러모로 아쉬운 영화다. 꽤 멋진 포스트 아포칼립스 모습과 카체이싱,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했지만 전편과 같은 긴장감이 많이 줄었고, 좀비 영화로서의 매력도 떨어지는 편이다. 전편의 배우 마동석과 같은 통쾌한 캐릭터가 없어져 상황 자체에서 오는 통쾌한 느낌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또한 신파 장면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전편에 비해 좀 더 시간을 할애하여 가족을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전편보다 더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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